창세기 32장 21-30절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

부산진교회 청년부 겨울수련회 설교, 2016년 2월 26일, 정대진 목사

창세기 32장 21-30절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특별히 창세기에서 ‘질문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범죄 하여 숨었을 때 그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또한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살인자 가인에게는 다음과 같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렇듯 인간에게 질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왜냐하면 ‘질문’이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이 그것을 아는 이에게 취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연약한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질문의 또 다른 성격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확인’의 기능입니다. 일반적으로 연인들끼리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바로 ‘나 사랑해?’입니다. 굉장히 모순되지 않습니까? 분명 사랑해서 만나는 사이인데 왜 상대에게 계속해서 그 사랑에 대해 물어보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나를 사랑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질문하시는 이유는 우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확인시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자세히 묵상하며 우리 각자를 향한 주님의 질문 앞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길 원합니다.

본문 속 야곱은 한 마디로 ‘위기의 가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지팡이 하나만 손에 쥐고 광야를 지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젊음을 소진하여 마침내 굉장한 성공과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가족들과 어마어마한 가축 떼들은 단순한 피붙이와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그 모든 것들은 숱한 아픔과 상처 끝에 얻어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결실 곧, 자신의 지나온 청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모든 것들을 단 한 순간에 잃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지금 온갖 고생 끝에 마침내 자신의 식솔들을 이끌고 형에게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의 형 에서의 눈에 야곱은 평범한 동생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자신의 축복을 가로챈, 그래서 그로 하여금 극도의 증오를 불러일으키게 한 대상입니다. 실제로 그는 과거, 야곱을 죽이려 하였고 복수를 이루기 위해, 아버지 이삭이 빨리 세상을 떠나기를 고대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야곱이 형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깊은 염려와 불안 속에 애타게 가슴을 졸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우리가 읽은 본문 앞에서 장차 닥칠지도 모르는 재난에 자신의 모든 처세술을 다해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그가 발버둥을 쳐도 형 에서가 무려 400명이나 달하는 패거리를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 앞에서는 그저 심히 두렵고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최종적으로 취한 행동이 바로 얍복 나루에 홀로 남아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기자는 이 모습을 가리켜 ‘씨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행자 곧, 천사를 붙잡고 몸부림치며 간구하였고 그의 애절한 울부짖음 앞에서 천사는 인간의 가장 강한 뼈인 허벅지 관절을 내리쳐 그를 불구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놓지 않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질문이 조금 당혹스럽지 않으십니까? 한 인간이 처한 극한 절망의 순간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난데없이 야곱의 이름을 물어보셨을까요? 그의 이름이 ‘야곱’ 인지 몰라서 그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란 그의 이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 이란 그의 이름의 뜻은 그의 출생과 연관이 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형과 싸움을 하였고 마침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부모는 그의 이름을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의 ‘야곱’으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발꿈치를 잡았다는 말은 히브리 문화에서 관용적으로 ‘남을 걸려 넘어뜨리는 자, 속이는 자’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실제로 그의 인생에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렇게 다른 누군가를 속이고 속임 당하는 ‘야곱’된 삶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에게 있어 그의 이름은 단순히 자신을 향해 타인들이 부르는 호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강렬히 살아 숨 쉬는 ‘눈물어린 자아’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야곱’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한다면 오늘 이 창세기의 말씀 앞에서 엄숙히 우리 자신을 향해 과연 내 안의, 나만의 야곱이 누구이고 그 야곱이 어떤 몸짓과 표정을 하고 있는지 가만히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살펴볼 때, 제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 지나온 시간들 가운데 새겨진 가장 경멸어린 삶의 자취, 여전히 내 존재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수도 없이 내면을 할퀴고 지나가는 짙은 상처들. 그 모든 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야곱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름을 물으신 까닭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야곱”이 “야곱”인 것을, 그리고 우리 각자의 진정한 이름을 주님께서 이미 그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당신에게만은 우리 안의 야곱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길 바라십니다.

현재까지, 오랜 시간 점점 더 한국 사회를 어둡게 하는 안타까운 문제는 바로 ‘자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가슴 아픈 선택을 한 이들을 가리켜 함부로 비난하고 정죄하기 전에 이에 대해 생각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이르셨던 요한 1서 3장 15절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미워한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 하겠습니까? 그것은 곧, “영적 자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우리 안의 야곱에 얽매여서 스스로를 미워하여 끝내 영적 자살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은 우리안의 야곱을 증오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직히 마주하여 ‘제 이름은 야곱’이라고 숨김없이 토해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고백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 이름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인간이 어찌 감히 전능하신 하나님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분명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져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뒤흔든 사람’이라는 의미를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누군가가 하나님에 의해 이름이 바뀐 것은 우리에게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 앞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신 것을, 그리고 그 외에도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신약 인물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에 의한 ‘이름 짓기’의 참된 의미를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 1장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창세기 1장에는 창조의 하나님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것이 우리들의 중요한 신앙 고백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때, ‘말씀으로’ 행하신 창조사역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 1장 3-5절 함께 읽겠습니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첫째 날 빛을 창조하셨을 때 그냥 ‘밝아져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빛’이라는 ‘이름’을 정확히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또,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며’ 그 둘의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둘째 날과 셋째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8~10절 함께 읽겠습니다.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뇌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는 둘째 날에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며, ‘하늘’이란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또한 셋째 날에도 뭍을 “땅”이라 부르시며 이름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곧 ‘이름 짓는 일’ 이었음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피조물의 이름을 지으심으로 천지 창조의 서막을 열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시며 창조사역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것은 단지 한 인간의 호칭변화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갑에서 을로 부르기 쉽게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새 이름 안에 담긴 야곱을 향한 당신의 창조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쓰라린 좌절과 실패를 안고 당신께 그대로 나아간 야곱을 결코 예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온 생명과 능력을 다해, 기어이 이스라엘로,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 변화시키고, 새롭게 창조하시겠다고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얍복 나루에 지쳐 쓰러져있는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강렬한 약속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를 비롯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야곱들에게 동일하게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가만히 야곱으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이스라엘로 다시 일으키십니다. 우리 안에 새 일을 이루십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향해 창조의 초대와 외침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수련회이기 때문에 주일과 달리 좀 더 풍성하고 쉽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달하고 싶어서 설교를 준비하며, 이와 관련된 예화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이야기가 없어 원치 않았지만 부득이 저의 지난 일들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남들보다 비교적 일찍 목사가 되는 꿈을 품고 빠르게 신학과 목회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 저를 가장 절망스럽게 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스스로가 목사로서 매우 “부적격”하다는 심각한 자괴감이었습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언어 장애”였습니다. 저는 고3때부터 발음기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군 제대 후에는 언어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무대 공포”였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에는 전혀 이상이 없지만, 선천적으로 심장에 약간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잘 놀랄 뿐만 아니라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 있을 때 심하게 긴장하곤 했습니다.

세 번째가 결정적인데 저는 “사회성”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결과적으로 저는 청소년 때 까지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제 20대 이후부터 저를 아시는 분들은 잘 못 믿으시는데, 심지어 교회에서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치도 없었고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못하며 엇나가는 말과 행동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의 무시와 꺼림을 당하며 10대 후반까지, 꽤 오랜 시간을 힘겹게 보내왔습니다.

만약 여러분이시라면, 발음이 매우 부정확할 뿐 아니라 강대상 앞에만 서면 제대로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게다가 사회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을 흔쾌히 여러분 교회의 목사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저 같아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때문에 저는 저 스스로를 한 없이 미워하며 10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20대가 된 후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 약점들이 남들 눈에 쉽게 드러나 보이진 않아도, 여전히 그 흔적들에 갇혀 지냈습니다. 나름 노력을 하긴 했지만 아직 제 발음은 많이 어눌했고, 여러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좀처럼 쉽지 않은 서툰 관계들 때문에 스스로를 격하게 질책하는 나날들이 20대 중반까지 지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런 저의 목사로서의 “부적격”이 오히려 조금이나마 “적격”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제 못남과 한계를 고통스럽게 절감하면 할수록, 마치 저는 본문 속 야곱처럼 주님께 눈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때마다 제가 극적인 변화를 체험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강박적으로 너무 과하게 기도하며 교회 생활에 지나치게 얽매였던 탓에 부작용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비록 그 순간에는 의식하진 못했지만 결국 하나하나 이어져 하나님께서 저를 이스라엘로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거대한 치유와 변화의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은혜 안에서 비록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서툴 지만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 여러분의 목사로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매주 강단에 설교할 때 마다, 이전과는 매우 다른 제 모습들에 작은 기적을 경험하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저는 아직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고 또 현재 어떤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흙으로 지어져 분명한 한계와 약점을 지닌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야곱으로서 각자 눈물어린 상처와 절망들을 이겨왔고 그리고 아직 싸워가는 중임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담 청년 여러분, 그 모든 좌절과 아픔을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아시고, 또 사랑하심을 더욱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처럼 쓰러져 있는 우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섭리와 깊으신 뜻 안에서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은 단순히 한 인간의 호칭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이 땅위에, 역사상 실존했던 언약 공동체의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자손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원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이루어진 국가의 이름이 ‘아브라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삭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얍복 나루에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실 때 그분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훗날 이 땅에 세울 언약공동체를 향한 그분의 기대와 소망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혈연공동체로 구성된 이스라엘은 끝내 하나님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새 이스라엘, 즉 이미 실현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세우기 위해 오신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죽기까지 그리고 다시 살아나시면서 마침내 이루고자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참 이스라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나라는 과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 그 옛날 온 세계를 창조하시며 품어 오신 꿈이자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며 기대를 걸었던 나라,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분명히 보이셨고, 장차 다시 오실 때 완전히 이루실 그 나라는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듯이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지금, 이 곳을 포함하여 모든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 그분의 방법으로 실현되고, 그분의 생명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나라를 위해 우리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새롭게 하셨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믿고 따른다면,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우리의 존재를 온전히 변화시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전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무게를 우리의 온 삶으로 지탱해야할 책임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구원의 감격만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믿는 자의 온전하고 향기로운 삶으로 그분의 나라를 넓혀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영적 환희에 잠기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의 절정입니다. 허나 그러한 감격에만 빠져 이스라엘로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삶을 도외시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가식적이고 이중적으로 변질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런 이들로 가득한 교회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은커녕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공동체로 전락하고 말았음을 우리는 지난 2천년 교회 역사를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 주위의 또 다른 야곱들을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그늘진 다른 이들의 절망이 보이십니까? 사회적 약자들의 탄식이 들리십니까? 매일같이 죽음과 직면하는 연약한 생명들의 눈물어린 고통이 느껴지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이스라엘로 새롭게 하기 위해 바로 우리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 시키셨음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전인 19일에 한 미국 여류소설가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바로 “하퍼 리”(Harper Lee)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녀의 대표작인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를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소설”의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삶의 변화”를 두고 이야기 한다면 저에게 단연 최고의 소설은 이 “앵무새 죽이기”입니다. 미처 못 보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30년대 미국이 무척 가난하고 어려웠을 때 인종차별이 매우 심했던 남부 앨라배마 주의 메이콤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마을의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이 메이옐라 이웰이라는 백인 여성을 성폭행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변호사인 에티커스 핀치가 톰의 국선 변호사로 선임되어 열성적으로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습니다. 그러자 백인 우월주의가 가득한 마을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심각한 위협과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웃에 사는 괴팍한 성격을 가진 ‘듀보스 할머니’가 핀치 변호사의 아들, 딸인 젬과 스카웃을 향해 ‘네 아빠는 네 아빠가 도와주고 있는 쓰레기 같은 깜둥이들보다 나을게 없어!’라는 끔찍한 비난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젬은 마침내 참지 못하여 듀보스 할머니가 아끼는 꽃밭을 망쳐놓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핀치 변호사는 아들을 엄히 꾸짖으며 듀보스 할머니께 사과하라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딸 스카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딸에게 핀치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 내용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제 여름이 오면 너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대해 이성을 지켜야 할 거야... 너랑 젬에게 부당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때가 있어.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을 하느냐 하는 건 –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커서 어른이 되면 어쩌면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이 문제를 되돌아보게 될 거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여러분, 부당하게 차별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을 끔직한 모욕과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고 그의 편이 되는 게 대체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냥 양심의 소리에 잠시 귀를 닫은 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움직이는 길을 찾아 안전하고 편하게 살면서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 드려도 되지 않을까요? 왜 핀치 변호사는 그렇게 어렵고 힘든 결심을 하며 뜬금없이 교회와 하나님을 언급했을까요?

그것은 그 둘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이스라엘로의 회복의 은혜를 소중히 간직하는 것과 그 은혜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응답으로서 이 세상 한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세워가는 것이 동일한 것임을 작가가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당하는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함께 하는 것이기에 그 분을 향한 또 다른 예배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주일에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뵙는 것은 교회 밖에서 주님의 뜻을 더욱 충실히 따르기 위하기 위함임을 반드시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핀치 변호사와 같이 이 시대의 참 이스라엘로, 진정한 예배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반대되는 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거짓과 폭력을 물리치시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르게 세우길 원하심을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바르게 깨달으시길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땅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시시때때로 얍복 나루위에서 지쳐 쓰러진 야곱의 절망 앞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이름을 물어 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음성 앞에 주저함 없이 우리안의 야곱을 낱낱이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든 소유와 생명을 다해 그리고 전 존재를 다해 믿음으로 응답하시는 모두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소망합니다.

기도 :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이름 지으심으로 천지창조를 이루신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향한 놀랍고 크신 은혜를 소리 높여 찬송하길 원합니다. 

저희를 향해 더 이상 너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음성 앞에서 참된 이스라엘의 삶을 이루어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꿈꾸시며 기대하셨던 새 이스라엘의 지평을 넓혀가길 원합니다.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를 바로 세워 주시옵소서.

이어질 수련회 순서들을 통해 우리 각자가 참되고 진정한 변화와 새로움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참고문헌: Harper Lee, To kill a mockingbird. 김욱동 옮김. <앵무새 죽이기>. 서울: 문예출판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