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8일 수요일

에베소서 2장 1-10절 "억울해 하지 않는 사랑"

오순절 후 열 한 번째 주일, 2016년 7월 31일, 부산진교회 청년 설교, 정대진 목사
에베소서 2장 1-10절 "억울해 하지 않는 사랑"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때때로 우리는 다시는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무례하고 개념 없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옛 어른들은 흔히 "망나니" 혹은 "불한당"이라고 낮잡아 부르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비슷한 표현 중 “깨뜨릴 파”와 “떨어질 락” 그리고 “집 호” 합한 한자어 "파락호"(破落戶)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지금은 잘 안쓰지만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후손 중에 가문을 돌보고 지키는 것보다 먹고 노는 일만 좋아해서 재산을 흥청망청 낭비하여 집안을 깨뜨리고 추락시키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매우 악명 높은 "파락호"가 있었는데 바로 "김용환"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안동 지방의 뿌리 깊은 양반인 의성 김씨 학봉 종택 13대 종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매일 같이 하는 일은 안동의 노름판이란 노름판에는 다 끼어서 도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초저녁부터 밤새도록 노름을 하였는데 보통 판이 끝나갈 무렵에 큰돈을 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따면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고 만약 돈을 잃으면 "새벽 몽둥이야!"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러면 노름판 주변에 숨어 있던 20여명의 그의 부하들이 도박판을 덮쳐서 자루에 판돈을 쓸어 담아 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도박으로 얻는 것 보다 잃은 게 훨씬 더 많아서 종갓집뿐만 아니라 오늘날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0억이나 되는 논밭 18만평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을 시집보낼 때 시댁에서 새 장롱을 사오라고 준 돈마저도 노름으로 날려버렸고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헌 농을 딸의 편에 보내며 연신 눈물 흘렸습니다. 이런 몹쓸 인격과 성품의 파락호 김용환이었지만 문중의 중심인 장손인지라 그가 많은 재산을 잃어버릴 때마다 가문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이 매번 돈을 모아 그에게 보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그 돈을 아껴 쓰지 않고 역시 노름으로 날려버렸습니다. 때문에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거침없는 비난과 악평을 아낌없이 퍼부었습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천하의 몹쓸 “파락호”인 까닭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렇게 바르지 못한 나쁜 사람들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진노의 자녀"입니다. 좀 더 쉽게 풀면 '하나님의 큰 화를 불러일으키는 불효막심한 아들, 딸'이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몇 몇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그런 진노의 자녀이자 영적 파락호였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으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다함께 1-3절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본문 말씀은 1차적으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따라서 이 편지가 기록되고 전해진 특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오늘 우리에게 곧 바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본문 주제는 우리를 포함한,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너희" 와 "우리"에,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저와 여러분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본문 1-3절 말씀은 그런 "우리"가 처했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죄와 잘못을 저질러서 본질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2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분위기에 따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통치를 따른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다른 편지에도 잘 드러나듯이 이 당시 사람들은 하늘이 몇 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오늘날로 따지면, "대기권"을 다스리는 존재, 즉 당시 전 유럽을 다스리는 로마 제국의 폭력과 착취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악의 세력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를 사랑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따르기 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힘 있고 화려한 하늘의 주인을 따라 욕심껏 맘대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참된 왕이신 아버지 하나님에게 있어 "진노의 자식들"이라고 무겁게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날마다 '과연 누구의 다스림에 따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엄중히 던지며 그 답을 찾아가기를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자 왕은 절대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돈과 권력의 하수인 들이 아니라 그 보다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진노의 자식들"인 모든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다함께 4-7절 말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사랑어린 다스림을 거부하고 저버린 영적인 파락호인 인간들을 죽음 가운데 가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 안에 가득한, 아니 그 분 자신인 위대한 사랑이 그를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듯이 놀라운 은혜 가운데 우리도 주님과 같이 다시 살리심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고 다스리시는 진정한 드높은 하늘로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하늘 뜻 펼침에 동참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온 세계를 생명과 평화로 아름답게 가꾸고 변화시켜나가시길 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철저히 불효막심한 진노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를 다함없는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까닭은, 그처럼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를 통해 영원히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님을 이스라엘만의, 바울만의 그리고 에베소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온 세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우리 모두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이러한 위대한 은혜의 의미를 8-10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함께 읽겠습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적인 파락호인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그렇게 죽음의 막다른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절망의 동굴에서 희망의 들판으로 옮겨간 것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라고 믿는 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러한 생각은 우리가 또 다시 영원한 죽음을 향한 진노의 자식들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자격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아버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잊고 외면한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편지하며 사람들이 죽음과 생명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어넘은 구원을 얻은 것은 결코 그 스스로에게서 말미암은 게 아니라 너무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 진정한 은혜와 평화를 누리는 것을 두고 자신의 경건과 능력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감히 상상도 못할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면서 그 비행기를 조종한 파일럿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잊고 마치 자기 힘으로 그 먼 거리를 이동한 것처럼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대체 왜 이런 위대한 사랑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셨을까요?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매번 거스르고 배은망덕한 사람들을 가만히 둘 필요 없이 이 땅에서 그냥 확 쓸어버린다 해서 그 분께 전혀 아무런 손해가 없습니다. 그 대신 당신의 말을 로봇처럼 꼬박꼬박 잘 듣고 철저히 복종할 또 다른 피조물을 만드는 게 오히려 하나님께 더 편하고 이익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스스로 이미 완벽한 주님께서 혼자 편하게 지내시지 않고 굳이 세상을 만드실 뿐만 아니라 당신께 잘못한 사람들을 살리시려고 구태여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셔서 죽임 당하신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제품과 작품의 차이를 아십니까?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사랑이 그 안에 담겨 있느냐 아니냐 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가 만드신 바"라고 편지하였습니다. 이 말을 공동번역과 새번역 성경은 "작품"이라고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 <포이에마>에는 "창조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많은 사람들이 집착하고 연연해하는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음 받은 작품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사랑의 빚을 이미 그 분께 졌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단지 작품으로만 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아들, 딸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토록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고 아끼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억울해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 내어놓으시면서 까지 죽음과 절망으로부터 살려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명확히 요약하며 이와 같이 우리가 지음 받고 구원받은 목적을 본문 10절에서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간혹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았다는 진리를 두고,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어떤 행동이나 겉모양이 결코 구원받는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올바른 삶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선한 일'을 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게 살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앞에 달린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조건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서에 소중히 기록된, 이 땅 위에 예수님께서 걸으신 삶의 길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처럼, 주님과 같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편에 서서 하나님 나라를 더불어함께 즐겁게 세워가야 합니다.




천하의 몹쓸 노름꾼인 김용환은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한 다음 해인 194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그에 대한 놀라운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알고 있듯 파락호가 아니라 사실은 독립투사였습니다. 그가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진 어마어마한 가문의 재산은 실은 만주로 보내져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일제에 감추기 위해 도박에 미친 사람으로 자신을 위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김용환은 주위 모든 사람들로부터 쉼 없이 비아냥과 모욕을 겪어야 했지만 가족들에게도 철저히 입을 다물 것을 엄하게 명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숨을 거두기 얼마 전 독립군 동지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는 만주에 돈을 보낸 사실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나?”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 할 필요 없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 모든 사람을 괴롭히진 않았습니다.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 중에 자신들 말 잘 듣는 사람들은 아낌없이 특혜를 제공해줬습니다. 따라서 김용환 역시도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포기하고 “당연히 할 일”이라 말하며 그것으로 인해 겪은 희생과 아픔에 대해 억울해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자기 눈앞에서 광기에 젖은 권력을 맹렬히 휘두르는 일본 제국주의의 다스림은 결코 영원할 수도 없고 영원해서도 안 된다고 믿었고 그것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고 맞서 것이 바로 조선 땅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를 역사는 결코 잊지 않고 1995년 건국훈장을 수여 했을 뿐만 아니라 안동 독립운동기념관에 그의 일대기를 전시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로마와 일본과 같은 제국이 아닌, 불의한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가들과 재벌들이 아닌, 오직 주님만이 온 우주를 참으로 다스리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하나님께서 파락호인 우리를 놀라운 은혜 가운데 그 어떤 비극과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리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아들, 딸들은 때때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이루어가는 일에 오해와 아픔을 겪는다 할지라도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모든 어려움 속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르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 어리석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모든 걸음을 주님께서는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며 변함없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 손을 잡고 이끄시는 주님을 따라 믿음의 여정에 함께하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주신 하나님. 

영적인 파락호이며 진노의 아들, 딸들인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높여 찬양합니다. 또한 그런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시고 또 다시 살려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위대한 구원의 감격을 늘 마음에 깊이 새기며 주님 안에서 늘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넓혀가는 선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구원의 하나님
자격 없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위대한 은혜에 감사드리며 한 주간 삶으로 구별한 예물을 드립니다. 기쁘게 받으시어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담청년들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계속되는 무더위 가운데 몸과 마음 지치지 않고 늘 건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웃을 더욱 따뜻한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내면의 여유 허락해 주시고 저마다 계획 하는 인생 여정 가운데 주님의 신실한 돌보심 항상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보냄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구원의 감격을 지키며 그 어떤 시련과 오해 속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십시오. 자격 없는 죄인을 향한 주님의 위대한 은혜가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합니다.


예담: 아멘!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을 잊은 채 때때로 신앙을 자랑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선물로 받은 구원을 소중히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이루어 가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믿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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