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후 두 번째 주일, 2016년 5월 29일, 부산진교회 청년예배 설교, 목사 정대진
이사야 6장 1-8절 “나를 보내소서”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어느 한 지도자의 죽음을 알리며 시작합니다. 그는 바로 남유다의 “웃시야 왕”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것을 아주 짤막하게 언급하였지만 이것은 그리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웃시야는 평범한 왕이 아니라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민족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6장은 그가 매우 강한 군대를 만들어 유다를 크고 힘 있는 나라로 일으켰음을 상세히 소개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8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8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한 마디로 그는 남유다 최고의 군사적 전성기를 이끌던 강력한 군주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만 비극적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앙의 질서를 교만한 마음으로 어기다가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하필 그때가 아시리아 제국이 중동지역 최강국으로 급부상하던 시기라는 사실입니다. 웃시야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5년 전에 아시리아 왕으로 즉위한 디글랏 빌레셋 3세는 망해가던 자신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전성기를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중동의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도 침략하여 집요하게 수탈하였습니다.
또한 고대서아시아 문서에 따르면 그는 이스라엘 왕 “베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호세아” 왕을 세울 정도로 심각한 내정 간섭을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디글랏 빌레셋 3세는 훗날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시리아 제국이 동족 북이스라엘을 유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남유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자신들 역시도 그런 위기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다른 때도 아닌 바로 이렇게, 민족이 처한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 그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그의 죽음을 그 시절, 유다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것은 분명히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나간 웃시야를 그리워하며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 저마다의 “웃시야 왕”은 과연 무엇입니까? 다르게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서 있어 만약 지금 당장 사라졌을 때, 갑작스러운 커다란 무서움과 절망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여러분이 하나님대신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회적 지위 일수도 있고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잔인하게도 우리가 우리 곁에, 우리만의 웃시야 왕과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대신, 우리가 도저히 미처 생각하지 못한 때에 저마다 가장 기대고 의지하는 무언가를 홀연히 데려가시곤 합니다. 그래서 종종 깊고 깊은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때 우리는 마냥 절망과 슬픔에만 사로 잡혀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우리를 향해 외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비극의 시대에 결코 숨어계시지 않으시고 예언자를 통해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 때, 이사야가 본 것이 무엇인지 우리 다함께 본문 1절 읽겠습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는 드높은 보좌위에 앉으신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덮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환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주님 곁에서 섬기고 모시는 천사들의 찬양을 통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천사들은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두 날개로 날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그 천사들이 과연 무엇이라고 찬양했는지 다함께 3절 읽겠습니다.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천사들은 “거룩하다”고 세 번이나 연달아 선포했습니다. 구약성경을 기록할 때 쓰인 히브리어의 강조 법은 조금 독특합니다. 우리말은 어떤 무언가를 더욱 힘주어 말하고 싶으면 “정말”이나 “매우” 같은 강조 부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에는 그런 강조 부사가 발달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어떤 단어나 어구를 강조하고 싶을 때는 그것을 반복해서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해 “거룩하다”고 세 번이나 찬양한 까닭은 그렇게 주님께서 진실로 거룩하신 분이심을 온 몸과 마음으로 힘써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 가사를 통해 1절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습이 알려주고자 하는 바를 다시금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는 만군을 지휘하시는 왕이시고 그분의 영광, 즉 통치 영역은 온 땅을 뒤덮는 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지는 4절은 그러한 천사들의 찬양 소리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성전이 크게 흔들리고 그 안에 연기가 가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분의 임재가 더욱 명확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그 절망의 시기에 예언자 이사야가 온 민족을 대신해서 본 환상의 내용입니다. 그는 이 환상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분명히 온 세계를 다스리신다.’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복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비록 인간의 강한 왕인 웃시야는 죽었지만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진정한 왕이신 주님의 통치는 영원함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왕을 잃은 시대를 살아가며 저마다 웃시야의 상실을 경험할 때, 이사야가 목격한 이 환상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에 의해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주님께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버리신 것처럼 느끼는 순간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옷자락이 여전히 온 세계를 휘덮고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하신 뜻이 주님의 방법대로 반드시 이루어짐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놀라운 환상을 목격한 이사야는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었습니다. 그 분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더러운 죄악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천사 하나를 보내어 숯을 가지고 이사야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당신의 전적인 은혜를 통해 이사야의 죄가 완전히 용서 받았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보이신, 당신의 다스리심과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해 매우 의미심장한 방법을 택하십니다. 우리 다함께 8절 말씀 읽겠습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8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분명 누군가 당신을 대신하여 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냄 받을 사람을 애타게 찾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그 말씀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지목하여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이사야에게 강요하거나 몰아붙이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자신을 따스하게 휘감는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기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신비로운 체험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 환상을 통해 주님께서 보여주신 뜻을 분명히 깨닫고 알며 자신이 속한 사회와 역사 속으로 뛰어들어 예언자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워 나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따르는 저마다의 왕의 죽음 앞에 슬퍼하고 두려워하곤 합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보다 그 누군가를 더욱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 그리하여 우리가 진실로 믿고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드려야 할 분은 우리 눈앞에 보이는 웃시야가 아닙니다. 바로 높이 들린 보좌위에서 온 성전을 옷자락으로 가득히 덮고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 시대의 이사야를 애타게 찾고 계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 것인가!” 하나님 나라는 결코 많은 힘과 지식을 가진 사람, 다른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 사람들에 의해 넓혀가지 않습니다.
그 대신, 바로 이와 같은 주님의 부르심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온 마음으로 고백하는 그 작은 자를 통해 참되게 이루어져 갑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 분명히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외에도 많은 예언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사람들은 그들의 입술에 담긴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핍박했고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낼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 땅 위를 살아가시며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름 받은 신앙공동체는 역사의 파도를 헤치며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전하고 오늘 우리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주일,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왕이신 주님을 한 마음으로 고백하며 이 시대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부르심에 응답함을 뜻합니다.
오늘날, “웃시야의 죽음” 그 이상의 불안과 공허가 사람들 마음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들을 살리는 길은, 아니 그 먼저 우리 자신이 사는 길은 바로 이사야가 환상을 통해 목격하고 고백한 그대로 주님께서 진정한 왕이심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 그 믿음을 서로가 함께 나누며 격려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 시대의 이사야로 일으키고자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날마다 신실하게 응답하는 모두가 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만군의 주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계의 참된 왕이심을 믿습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다스림이 우리의 삶을 통해 이 땅위에 흘러 넘쳐감을 고백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위한 일꾼을 우리 가운데 찾고 계심을 깨달으며 그 부르심 앞에 우리의 모든 삶으로 응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심을 따라 이 땅에 오시어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왕이신 하나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는 순간에도 날마다 신실한 다스림으로 함께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이 예물을 드립니다. 기쁨으로 받으시어, 희망의 빛을 잃어버린 사람들, 역사의 발전에 소외된 사람들,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 청년들을 위해 마음 깊이 축복합니다. 저마다 걸어가는 삶의 여정 가운데 주님의 다스리심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참된 다스림으로 돌보아 주시고 몸과 마음의 건강 지켜주시옵소서. 가정 안에 말 못할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시고 평화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보냄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부르심에 순종하는 일꾼으로 살아가십시오. 거룩하신 만군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다스리십니다.
예담: 아멘, 저마다 의지했던 웃시야 왕의 죽음 앞에 그저 절망에만 사로잡혔던 어리석음을 뉘우칩니다. 우리의 입술을 깨끗이 하며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슬픔과 고통으로 뒤얽힌 저 낮은 곳을 향해 우리를 보내소서! 아멘.
참고문헌
김근주 <이사야가 본 환상>(서울: 비블리카아카데미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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