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후 일곱 번째 주일, 2016년 7월 3일, 부산진교회 청년예배 설교, 정대진 목사
에베소서 1장 15-23절 “그의 능력”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제게 가장 창피하고 굴욕스러웠던 순간은 바로 운동회였습니다. 왜냐하면 단거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운동회 때마다 모든 학생들이 5-6 명 정도씩 한 조를 이뤄서 운동장 반 바퀴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1등부터 3등까지 손목에 도장을 찍고 작은 상품을 주곤 했는데 저의 경우 단 한 번도 꼴등을 벗어나 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다음 조의 1등에게까지 추월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무척 몸이 병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있어 어린 시절 운동회란 곧 전교생 앞에서 저의 허약함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향해 ‘약하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품으며 많은 시간 주눅 들고 움츠린 채 자랐습니다. 그런 까닭에 어린 시절의 저는 조금이라도 저보다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나친 동경의 시선을 보냈던 아픈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런 우울한 시절들을 무난히 잘 극복하고,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자신에 대해 ‘약한 사람’이라는 인식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인다할지라도 모든 인간은 분명히 약한 존재라는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강한 척할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일지라도 사람들은 아주 작은 세균 하나에, 결정적인 말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몸과 마음이 쉽게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기댈 강한 무언가를 찾아갑니다. 여러분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이른바 명문 대학에 진학하도록 강한 압박받는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 한 이후에도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힘든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취직한 이후에도 승진하기 위해 대인관계를 잘 쌓으려 애쓰고, 노후를 위해 일찌감치 많은 돈을 모으는 것도, 그리고 열심히 운동하고 몸에 좋다는 약을 챙겨 먹는 것도, 결국 근본적으로 자신의 약함을 덮어줄 강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 모든 ‘강해 보이는’ 것들이 정말 우리의 모든 약함들을 덮어주기에 적합한 ‘힘’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학벌, 돈, 건강, 인간관계등이 결코 무가치 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가운데 열심히 취직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여러분으로 하여금 부득이 선택의 폭을 줄이게 만드는 오늘날 대한민국사회의 기형적인 구조에 마음 아파하며 여러분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잊어서 안 되는 진실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의지하는 그 모든 것들 역시 결국 연약한 인간의 손을 통해 얻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모두는 우리의 약함을 전적으로 메워줄 만큼 완벽한 힘을 제공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만히 되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능력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공부든 운동이든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하는 부분에 늘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때때로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스스로의 연약함들에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고 답답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렇게 자신의 약함을 발견할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추구하는 “강함”은 과연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렇게 여러분이 강해지고자 하는 노력들은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우리는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중요한 깨우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람들의 눈에 연약하기 그지없었던 에베소 교인들을 향한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은 쉽게 직업을 잃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 등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곧, 일반적인 의미의 성공과 동 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물론 그 모든 시련들은 예수님을 위해 받는 핍박이고 그로 말미암아 하늘의 상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신앙 때문에 매일같이 괴롭힘을 겪을 때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힘겨운 결단을 요구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 에베소는 (2주전 설교하며 언급한 데살로니가와 흡사하게) 매우 화려하고 번성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거센 강함 속에서 하루하루 자신들의 비참한 약함을 확인하며 살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그들을 향해 정성스레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약하지만 그들이 믿고 따르는, 아니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전능하신 지를 말씀하며 위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죽음을 이긴 “다시 살아남” 입니다.
다함께 20절 말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와 같은 복음의 본질을 가리켜 곧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은 결코 그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곧, 하나님의 모든 아들, 딸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약속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에 성도 역시 사망과 맞서 싸우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죽음을 겪지 않는 다는 말이 아니라 죽음에 담긴 저주와 파멸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인가요? 아마도 이 가운데는 마음 깊이 두고 있는 어떤 이성과의 사랑을 꿈꾸는 분도 있겠고,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길 바라는 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간절히 소원하던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을 눈앞에 두었는데, 그 때 갑자기 목숨을 잃게 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다소 끔찍하고 유치한 비유를 들어 죄송하지만 사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실제로 주위에서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그 때 어떤 마음일 것 같으십니까? 그것은 분명 절망,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 갖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입니다. 죽음이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공포의 본질은 단순히 우리의 숨이 멎고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희망과 기쁨을 단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곧,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깊은 근본적인 고통과 암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 역시 진정 구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그 언젠가 우리의 몸이 땅 속에 묻힐지언정 그 어떤 상처도 절망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우리를 완전히 죽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작은 죽음들을 이겨낼 수 있는 근원적인 생명력이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통해 가져야할 소중한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 앞에 괴로워 울부짖는 이들과 한 편에 서기 위해 기꺼이 죽음까지도 감수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죽이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로 몰아넣으면서 까지 기어이 모든 사람들을 살리신 능력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온 우주를 향한 다스림”입니다.
다함께 21-22절 말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단지 죽음에서 일으켜 살리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주님을 당신의 오른 편에 앉히시고 온 우주를 그 발밑에 두어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께서 다스리는 구체적인 대상이 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입니다.
이것을 쉽게 바꿔 말하자면, ‘지금 누군가를 강력한 힘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강한 힘을 자랑하는 로마 제국과 종교 권력을 휘두르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 막강한 권력과 힘을 내세우고 약한 이들을 무지막지하게 억누르며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 따르면 그러한 로마 황제와 대제사장조차 예수님의 발아래에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그들과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강력한 능력 아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땅 위에서 힘써 외치고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보다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참으로 다스리시는 왕은 화려한 옷을 입고 높은 의자에 앉아 강한 척하지만 실상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 가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세워 가시다가 권력자들에 의해 죽임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왕국”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진정한 능력의 주님이심과 또한 예수님 역시 그 다스림에 함께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알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통치를 이 세상에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문을 통해 두 번째로 가져야할 소중한 정체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약자들을 괴롭히는 폭군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독재자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국가가 아닙니다. 이와 정 반대로, 존재 자체가 사랑이시고 또한 스스로 아름다운 교제와 사귐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의와 평화로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능력의 왕이심을 반드시 믿길 바랍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 눈앞에 이 시대의 포악한 로마 황제들이 제멋대로 자신들의 힘에 취해 거짓과 불의를 행하고 다닌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분명히 온 세계를 다스리시고 마침내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왕국을 기어이 완성시키신다는 이 위대한 진리를 반드시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여러분의 모든 일상을 통해 이어가고 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이기심’과 ‘온 세계를 다스리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러한 능력의 예수님께서 지니신 몸이 바로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다함께 23절 말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교회에 대한 너무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선언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교회는 죽음을 이기시고 온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시는 능력이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고 교회를 세워가는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의 증거이자 도구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 자신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사람이지만 능력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 된 교회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해 주님의 진정한 능력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은, 그래서 기꺼이 스스로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 되시고 죽으신 이유는, 또한 다시 살아나시어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참여하는 교회로 우리를 부르신 까닭은 절대로 우리에게 그럴만한 가치와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살릴 수 있는 아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며 부탁하십니다. 주위에 있는 연약한 이웃들에게 힘을 과시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몸을 이루어 교회를 세워가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운동장을 꼴찌로 달리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을 비웃거나 값싸게 동정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이 멋대로 그어버린 창백한 경주선을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지우시고 저마다 가장 합당한 길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홀로 보내지 않고 친히 무릎을 낮추시어 어깨동무 해주십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끌어안으심으로 당신의 능력을 건네 주셨습니다. 또한 이 땅에 당신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며 우리로 하여금 약한 이들과의 하나 되며 또 다른 튼튼한 어깨동무를 이어가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연약함 때문에 답답하고 힘드십니까? 그럴 때마다 억지로 강한척 하려 하지 마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참으로 나는 누구인지를 반드시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약하기에 비로소 강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연약한 우리를 불러 모으시어 참된 힘이 넘치는 교회를 세우셨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능력의 주님이시요 교회는 위대한 부활의 공동체라는 놀라운 진리를 늘 마음 깊이 새기길 바랍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그 안에 담긴 모든 힘과 소망을 풍성히 경험하고 누리며 또 전하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 우리의 참된 힘과 능력이신 하나님
주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건지시고 다시 살리시며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이심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또 고백합니다.
주님, 또한 연약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어 당신의 능력 안에 품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의 거짓된 힘에 속지 않게 하시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약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참된 능력임을 바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진정한 나를 올바로 찾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당신의 몸 된 교회로 불러 모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참된 능력이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도 우리의 모든 약함과 한계를 보듬어 주시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그 은혜에 감사드리며 삶으로 구별한 예물을 드립니다. 주님 품안에 받으시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들에 소중히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하루하루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는 예담 청년들을 위로하며 축복합니다. 제 각기 준비하는 인생의 계획들 가운데 함께 하여 주시고, 지치고 좌절할 때마다 주님 안에서 희망을 찾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몸과 마음 늘 건강히 지켜주시며 가정 안에 여러 문제들이 은혜 안에서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보냄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올바르게 찾아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온 세계를 향한 다스림 안에 참여 시키십니다.
예담: 아멘! 때때로 거짓된 강함에 기대곤 했던 어리석음을 뉘우칩니다.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자신을 바르게 알아가겠습니다. 주님! 참된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약함을 넘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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