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8일 수요일

이사야 55장 1-11절 "하늘과 땅 사이에"

오순절 후 열 두 번째 주일, 2016년 8월 7일, 부산진교회 청년설교, 정대진 목사
이사야 55장 1-11절 "하늘과 땅 사이에"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학자들마다 약간의 의견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사야 40-55장의 말씀은 바벨론 제국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름 모를 예언자가 전한 희망의 선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인 이사야 55장은 현재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고 이제 머지않아 고향땅으로 돌아갈 이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분명히 기억하고 본문 말씀을 다시금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이 말씀 안에 담긴 주님의 생생하고 역동적인 구원과 은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절은 “오호라!”라는 감탄사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본래 히브리어는 <호이>인데 일차적인 뜻은 "재앙" 혹은 "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낱말은 이사야를 비롯한 구약의 여러 예언자들이 심판을 외칠 때 자주 사용하였고 그 대부분은 우리가 가진 개역개정 성경에 "화로다!"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여는 "오호라!"는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재앙을 온몸으로 살아낸 고통당한 이들을 향한 애끓는 슬픔과 위로가 뒤섞인 말입니다. 이것을 원어의 의미를 살려 굳이 늘려 표현하자면, ‘오! 화를 입었던 가련한 이들이여!’ 정도로 옮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짧은 단어를 통해 바벨론 포로살이 현장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예언자의 외침에 담긴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언자를 통해 애절한 목소리로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이어서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께서 베푸시는 생명의 잔치로의 초대입니다. 1, 2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점층적인 강조 표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오랜 포로생활로 굶주리고 지친 이들을 향해 마치 장사꾼과 같은 어조로 풍요로운 잔치 가운데 초대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마른 자들”에게 “물로” 나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와서 사먹으라”고 말하는데, 우리 말 번역에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이것의 히브리어 단어인 <쉬브루>의 원형인 <샤바르>는 단순히 '사다'라는 뜻이 아니라 '곡물을 사다.'는 의미를 그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자는 물과 곡식이라는 생존에 필수적인 먹을거리를 먼저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 무료로 주어지는 "포도주와 젖"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포도주와 젖이 그 시대 상류층들이 즐기는 최고의 음식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예언자는 포로생활로 지친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여시는 잔치를 선포하는데, 그 잔치는 생존을 위해 단순히 목을 축이고 주린 배를 불리는 정도가 아니라 가장 기름지고 향기로운 최상급 음식들로 가득한, 감격과 황홀의 극치입니다. 

게다가 이 잔치는 그렇게 몸만을 살찌우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내면역시도 살리는 전인격적인 은혜의 순간입니다. 그 절정에 바로 "다윗 언약"의 영원한 갱신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우리가 성경전체, 특별히 구약을 이해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두 가지 언약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 언약"과 "다윗 언약"입니다. 간단히 요약 하자면 주님께서 시내산 위에서 맺은 모세 언약은 '조건부 언약'이고 다윗언약은 '무조건 언약'이라는 둘 사이의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언약의 관점에서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경험한 후 낯선 땅에 포로로 잡혀 지내는 자신들의 처지를 두고 이 두 언약 사이의 가슴 아픈 모순을 확인하며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이 불행의 원인이 혹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조건을 담고 있는 모세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를 약속하신 다윗 언약은 과연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쓰라린 가슴으로 거듭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그들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무조건적인 다윗 언약을 떠나보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다윗언약을 거듭 확인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을 "영원히" 맺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사야서의 앞부분을 통해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듯이 바벨론에 의해 패배하고 나라를 뺏기기 전 유다 사람들의 부패와 죄악은 하늘에 치솟았고 따라서 현재의 포로생활은 그 모든 악행의 명확한 결과로 얻은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그들을 향한 당신의 영원한 사랑이 결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 떠나 심판을 받긴 했지만 그들의 바벨론 포로생활은 절대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그들이 겪었던 고통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도리어 바벨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회복 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끝없을 것 같은 저마다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겪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때때로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형벌 속으로 가둔 것 같은 절망에 빠지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반드시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영원히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덮쳐온 모든 절망들은 반드시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날에 당신의 방법으로 불현듯이 당신의 자녀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처한 힘겨운 상황과 정반대되는 은혜의 잔치를 베푸시며 지친 몸과 마음을 배불리 먹여 주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새 이스라엘인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거듭 약속함을 항상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 영원한 언약 가운데 우리가 그 어떤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6절에 담긴 예언자의 강렬한 호소에 온 마음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예언자는 이와 같은 은혜의 하나님을 찾고 부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을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에는 “불편한 진리”가 담겨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잔치로 초대하는 대상 속에 "악인"과 "불의한 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함께 7절 말씀 읽겠습니다.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예언자는 분명히 “악인”들과 “불의한 자”들에게도 주님에게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너그러운 용서를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이 때, 여기서 말하는 “악인”과 “불의한 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사야서 전체의 흐름과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은 힘없는 민중들을 착취했던 탐욕에 찌든 정치, 종교 기득권들과 유다를 정복하고 약탈한 바벨론 제국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잔칫상에 덩달아 초대하신 악인들과 불의한 자들은 지금 예언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다수의 유다 포로들로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악한 원수들입니다. 그들은 절망적인 바벨론 포로 생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여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그들 아무나 다 초대한 것이 아니고 회개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한 최고의 잔치를 철천지원수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그 모든 축제의 여흥은 산산이 깨지고 잔치는 분노의 자리로 돌변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구원은 철저히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들에게만 제한된다고 믿었던 유다인들의 신앙 전통으로서는 그 빗장을 바벨론 사람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까지 열어젖혔다는 말씀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진리입니다. 

오늘 우리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부산시내 최고급 호텔 뷔페로 초대 받았는데 그 옆자리에 여러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 기억만으로도 하염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앉아있다고 할 때 여러분의 기분이 어떨 것 같으십니까? 잔치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 바뀌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부르신다는 구원의 핵심은 우리가 연약한 죄인임을 생각할 때는 놀랍고도 위대한 복음이지만, 그 대상이 우리가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는, 우리를 몹시 불쾌하고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구원은 그 찬란함이 눈부시면 눈부실수록 독점하고픈 욕망의 대상이 되기 쉬운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님으로 말미암은 받아들이기 힘든 혼돈의 말씀 속에 휘청거리는 이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8-9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주님께서는 당신의 생각과 길이 인간과는 절대적이고 극명한 거리가 있음을 "하늘과 땅"이라는 명확히 대조되는 단어로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흔히 이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전혀 다른 차원이 있음을 강조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라는 위로의 의미로 이해돼 왔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펴본 본문의 흐름에 따르면 이 말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하늘과 땅 사이의 무한한 차이는 구체적으로 “구원의 대상”에 대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첨예한 긴장과 대립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강도사님이 찬양대 지휘도 함께 맡아 섬기셨습니다. 그 분께서 부활절 칸타타를 준비하시는데, 찬양 중에 “온 세상 위해 오신 주님"이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찬양대원들에게 그 가사가 신학적으로 잘못 되었다며 온 세상이 아닌, "내 백성 위해 오신 주님"으로 고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의 바탕에는 온 세상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가운데 구원 받을 사람과 그렇지 못할 사람을 이미 정하셨고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모두가 아닌, 그 중 일부인 “내 백성들”만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차가운 논리가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주장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물론 저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께 선택 되었다는 은혜를 강조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는 충분히 존중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끝끝내 거부하여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분명히 믿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누어 그들의 생각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애초에 당신의 은혜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미리 정해두었다는 주장은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들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 누구도 예외 없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누구도 당신의 사랑에서 제외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버리지 않고 온 세상 모든 사람을 택하시려 십자가 위에서 그 스스로 “버림받은 단 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감히 누가 구원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누가 주님께서 여시는 은혜의 잔치에 참여할 대상을 함부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하늘과 땅 사이의 영원한 거리와 온 누리를 차별 없이 적시는 빗방울 앞에서, 한없이 작은 인간의 유한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모든 죄악과 절망에서 건지신 주님의 희망과 생명을 그저 겸손히 높여 찬양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4-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였습니다.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그러므로 늘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그 한없는 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끊임없는 혼란과 당황으로 몰아넣는 다는 사실 말입니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은 결코 우리의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다 이해할 수 없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걷는 여정 속의 모든 의심과 질문은 오히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의 분명한 증거가 됨을 항상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본문에 묘사된 생명의 잔치를 그 당시 가장 더러운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계를 구하시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모욕과 폭력을 겪고 마침내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구원은 낡은 종교 전통에 갇혀 있던 동시대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하지만 땅 위에 세워진 주님의 십자가로 부터 울려 퍼진 더없이 놀랍고 위대한 사랑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 까지 맞닿아 청아한 공명으로 온 우주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모세와 다윗의 언약을 뛰어넘는 온 세계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영원히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새 언약 안에 자격 없는 악인이자 불의한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속해 있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사랑어린 약속을 더욱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땅 위의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이해 못할 뜻 앞에서도 더욱 올곧게 은혜의 복음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를 이 예배의 자리를 통해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베푸시는 모든 물과 곡식과 포도주와 젖으로 풍성한 소생을 경험하며 몸과 마음을 주님의 위대한 구원의 증인으로 드리는 모두가 되기를 마음깊이 축복하며 소망합니다.


기도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 
바벨론 포로들처럼 한없는 비참함과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잔치로 부르시는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동시에 그 잔치의 옆자리에 회개한 죄인과 악인들이 함께 하는 불편한 진리를 하늘이 땅 보다 높음 같이 크고 위대한 주님의 뜻 안에서 밝히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구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깊은 어둠속을 헤매는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 들고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하늘과 땅 사이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메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지극히 높으신 만유의 하나님
우리의 삶 가운데 생명과 은혜로 동행하시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한 주간 구별한 삶의 결실을 구별해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어 감정과 혐오를 넘어서는 주님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 청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무더위 가운데 건강 지켜 주시고 온갖 우울과 좌절 속에서도 굳건히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용기 주시옵소서. 저마다 꿈꾸는 계획들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시간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 언제나 주님 품안에 있음을 잊지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보냄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일상 가운데 주어진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드넓은 구원을 전하며 살아가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약속해 주십니다.

예담: 아멘,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제한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뉘우칩니다.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찾으며 모든 이들을 향해 차별 없이 사랑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하늘의 생각과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멘.








댓글 2개:

  1. 목사님 말씀 통해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풋내기의 목사님이 결코 아닙니다
    깊이 있는 말씅에 감사합니다
    늘 승리하시기를 원합니다

    답글삭제
    답글
    1. 몹시 서툴고 배울게 많은 부족한 사람의 설교를 과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